#1 가능성

회화의 한계는 꽤나 명확한 편이다. 미디어나 사진과 비교 했을 때 비교적 낮은 접근성과 인식, 하나의 시공간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유일성, 설령 껍데기는 모사할 수 있을지언정 회화에 담긴 본질마저 재현해내기엔 버거운, 복제에 대한 한계가 그 이유다. 하지만 어떠한 위치의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한계가 아닌 가능성으로 해석 될 수도 있겠다 싶다. 마찬가지로 김지훈 역시 회화를 한계가 아닌 가능성으로 풀어내려는 자들 중 하나다. 그는 회화 본연의 향과 촉감 자체에 집중하는 방식을 통해 남은 삶을 ‘살아 내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생존전략을 제시한다. 특히 머리 없는 새 연작 -A nameless bird series- 은 김지훈 회화 특유의 직관적인 묘법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삶과의 투쟁을 암시한다. 모든 생물에게 머리란 영혼의 자리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가차 없이 삭제되고 결국 남은 건 몸통뿐이다. 그렇게 머릿속 헤아릴 수 없는 사사로운 관념들은 휘몰아치는 배경에 의해 사라졌지만, 필사의 몸통만은 덩그러니 남는다. 결국 이 모든 순간을 버텨내야만 한다. 그제야 삶이란 명백한 실존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게 된 하나의 생명만이 화면 속에 남는 것 이다.

 

진짜 삶은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 이다

.

#2 똑바로 쳐다보기

그는 나에게 ‘똑바로 쳐다보기 전엔 절대로 그 대상을 그려낼 수 없다’라는 말을 했다. 정말이었다. 누군가와 짧은 대화를 나눌 때조차 상대의 눈을 3초 이상 똑바로 쳐다보기 힘든 것은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니까. 김지훈이 회화의 대상으로 선택한 소재들은 어느 정도의 납득 할 만한 구체적인 형상과 현실에선 쉽사리 경험하기 힘든 극단적인 현상이 반드시 공존한다는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같은 맥락으로 놓고 보면 김지훈의 회화는 일종의 ‘현실에 가까운 섬뜩한 상상화’라 표현해도 무방하겠다. 똑바로 쳐다보기 위한 방법론은 의식이 무의식화 되는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절대 정지되어 있는 -죽어있는- 사물 혹은 공간을 단순 모사하지 않는다. 설령 죽은 것일지라도 살아있는 것처럼 미디어화 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똑바로 쳐다보기 시작하면 언젠가 단순한 관찰과 이해의 영역을 초월하는 순간이 오는데 그 때부터 대상은 가감되고 왜곡된 형상으로 그려지게 된다.

 

 

당신의 슬픔과 열망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해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나 믿음을 묘사하십시오.

 

그러한 모든 것이 마음에서 울려 나오도록

은근하고 겸손하게 묘사하십시오.

 

 

#3 가장 뜨거운 삶은 파랗다

모든 예술가들에겐 그들만의 프리즘이 있다. 김지훈도 마찬가지다. 다만 진실이고 현실이기에 조금 더 시리고 강렬할 뿐. 그것은 오로지 형태와 색으로만 이루어진 거짓 된 아름다움으로 삶의 통증에 대한 처방을 내리고 싶지 않아서 였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의 회화가 시리도록 차가운 느낌이라는 일각의 수평적인 해석이 매우 안타깝다. ‘가장 뜨거운 삶은 파랗다’라는 작품이 이를 대변하듯 정말 뜨거우면 오히려 차갑다. 그는 남들이 보지 않는, 아니. 볼 수 없는 지점을 보고 또 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다. 똑바로 쳐다보고 거짓 된 처방으로 생을 마취하지 않기 위한 강력한 의지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건 착각에서 비롯된 행복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비극은 더 아름다울 수밖에 없음을 그는 분명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