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겐 팔기 싫은 -사실상 ‘팔리지 않는’에 더 가까운- 그림들이 꽤 많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그림이란, 그릴 당시. 그러니까 그 순간의 심상에 의거한 일종의 기록이자 삶의 순간인데 아마 그들이 사랑받지 못했던 이유가 ‘그 당시 내 삶의 태도가 결코 아름답지 못했기 때문인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이라도 관계가 틀어지면 일방적으로 마음을 닫고 포기하기 일쑤였고, 정체모를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당사자가 없는 틈을 타서 그들의 험담도 일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사람은 모두가 하나의 섬과도 같은 존재’라는 문구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떠올랐는데 제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아마 몇 주 전의 일인 듯합니다만, 나에게 있어서 섬이란 일종의 ‘매립지’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던 순간이었습니다.

마치 해적들이 해도에도 없는 무인도를 찾아 약탈한 전리품을 땅속 깊이 매설하듯, 나 역시도 검푸른 바다 한복판에 있는 이름 모를 섬에 못났던 순간들을 큰 궤짝에 모조리 집어놓고 깊숙이 묻어두고 싶었던 건지 모릅니다.

물론 그림을 보면 보편적으로 무인도가 갖춰야 할 조건 -풍부한 식생이라던지 금빛 모래로 덮인 해안- 에 모두 부합되는듯하지만, 색이 묘하게 바랜듯하고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자연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비교적 매우 짧은 시간 안에 그려내는 기법적인 측면 때문인 지도 모르겠으나, 어찌 됐건 의도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려놓고 보니 보면 볼수록 정말 그렇게 보여서 사실 조금은 놀랍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론 몇 년 만에 무언가를 제대로 그려낸 것만 같아서 기쁘기도 했고요.

최근 들어 -사실 혼자서 이것저것 쓴지는 꽤 오래되긴 했지만-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기에 거의 잡문에 가까운 ‘글’을 계속해서 써보려 하는 이유는 그림이 미처 채워주지 못한 일련의 공백을 차분히 메꿔주거나 지탱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이완시켜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쓴’ 다는 것과 ‘그린다’는 것은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고결한 행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록의 역사, 고우

Painted by KIM JI HUN

Survivalism_001
45.5 x 53cm, Mixed media on linen, 2017

Copyright © 2020 KIM JI HUN